■ㅡㅡㅡㅡㅡ한글을 절름발이로 만들어버린 국어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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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을 절름발이로 만들어버린 국어학자들>
 
  그러고 세종대왕께서 그 다음에 …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만들었는데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전부 창제하신건 아닙니다. 그전에도 그 비슷한 소리가 글자가 비슷하게 전해 내려오던 것인데, 그 어른이 확실하게 여러가지를 다 맨들어 놓은 것이지. 그런데 지금은 세종대왕께서 ..하게 만들어 놓은 한글은 몇줄이 없어지고 부호가 없어지고 그랬습니다. 그래 몇 줄이란 것은 여기 한글학자가 계신지는 몰라도 한글학자들은 혹 봤을는지 몰라요. 귀찮으니까 요새 철자법처럼 귀찮아요. 귀찮으니까 예전엔 그걸 언문(諺文)이라고 해가지고 ‘조수 이름을 닮아 가지고 있다. 새나 짐승이나 소리 지르는 소리를 들어서 이걸로 그려주면 고대로 나갈 수가 있다. 요새 말로 악센트를 고대로 표를 다할수 있다.’고 하는데 지금 지금의 한글 가지고는 국문학자가 얼마나 …. 하다는 한글 가지고 다 그걸 흉내 낸다고 못합니다. 요걸 뺏기 때문에 그러구 여기 그려 논 글자가 왜 무슨 까닭에 요렇게 생긴 글자를 왜 가라고 불러야 하느냐? 이렇게 생긴걸 왜 ‘아’라고 불러야하느냐? …에 점 하나만 찍든지 해도 ‘아’자가 되고 이렇게만 허는데도 ‘가’자가 될거 아닙니까? 헌데 이게 왜 그러느냐 원인이 있을거예요.
  한글학자 주시경(周時經, 1876~1914) 선생부터 죽 내려져 … 해도 그 대답해 주신 이 한번도 못봤습니다. 왜 여기 동그래미하고 여기 ‘아’가 돼야 똑바르냐? 요렇게 하는건 왜 ‘하’라고 부르느냐? 그게 원인이 있을꺼 아닙니까? 괜히 그냥 덮어 놓고 그려 놓은건 아닙니다. 모양 보기 좋으라고 부호 그냥 그려 놓은건 아니라는 말이여. 그러니까 우리들이 조상이 하시던 것을 허기 힘들다고 한쪽으로 들여 빼버리고 이것 빼버리고 저것 빼버리면은 세종대왕께서 그 고생을 허시고 맨들으신 것이 문화가 절름발이 문화가 돼버리고 말죠. 이것만 가지고 쓰시긴 다 쓰지만 예전엔 그걸가지고 오음음계(五音音階:한 옥타브 안에 다섯 음으로 구성된 음계)를 다 했습니다 오음음계를 다 글로 쓰고 그러면 글로 써내면 아 그것만 보고도 올랐다 내렸다 요새말로는 뭔가 다 나왔었는데 지금은 그것보고 우리들 하나도 못합니다.
 
  그러면 역학(易學)도 예전에 하던 역학하고 지금서 역학이 다른데 이치를 .. 하기 위해서 이런 철학을 연구하기 위해서 만든 역학인데, 그 역학은 중간에 와서 무슨 소린고 하니 이건 점쳐보고 있어 길하고 흉한거 좋고 낮은거 알기 위하는 점서(占書) 쓰려고 행세가 전락이 되었습니다. 단군 할아버지 그때 그 모시던 사람들 그 역학 만들때 그렇게 맨든건 아닙니다. 천지사물의 이치 원리를 알라고 한 것이지 그거 저 점이나 쳐먹을라고 하는 책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조상들이 해 내려오던 그 문화라는 것은 가장 좋은 문화 우리에게 가장 여러가지가 다 곱게 지은 문화를 갖다놓고도 중간에 와서 손에 지지고 왈가 지지고 해가지고 우리가 지금 절름발이 문화를 만들었어요.
 
 
<전래무예를 잘 모르고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를 인용하는 한심한 학자들>
 
  그러고 예전에 고구려가 당나라하고 손잡고 싸우지 않았습니까? 당나라하고 손잡고 싸울적에 당나라가 그때 여기 나올때나 주나라가 나올때나 저 자기 말로 천하 중국전체를 들어가지고 여길 나온거야. 나왔는데 여와서 ..하고 다 패전하고 당태종이 여기와서 첫번에 와서 여지없이 눈이 빠져가지고 들어갈 정도니까 아주 다 죽게 망해 들어갈적에 … (설인귀가) 우리나라 저 개소문[연개소문(淵蓋蘇文)]의 부장이니까 부장으로써 부장이니까 개소문이하고 합쳐내려서 싸운 덕분에 빠져나와서 싸움터에서 죽을걸 살았습니다. 그래 살았는데 그때 무예가 우리나라 재래 무예가 있었다. 지덕체(智德體)하는데도 체(體)도 지(智)도 물론 그랬고, 덕(德)도 그랬지만, 체도 우리나라 재래 무예가 있었는데 재래무예를 저쪽보다 훨씬 나으니까 우리가 크게 이긴거예요.
  중국.. 중국 가서 사신 자기라고 자기들이 전해 내려온 야사로 해 놓은걸 보면 개소문이하고 당태종하고 싸울적에 다 거기서 나온 것이 중국을 400주(州)를 다 점령해 가지고 통일하던 그 명장(名將)들이 왔는 데 일창(一槍)에 자삼장(刺三將:세명의 장수를 꿰다) 개소문이가 창 한번 가지고 들어가면서 빌리면 한꺼번에 산적꼬치 꿰듯이 장수를 셋씩이나 꿰서 집어 내버리니까 (당태종이 장수들더러) 싸우라고 하고 자기는 내뺐단말여. 그럼 그 사람(연개소문)이 힘만 세고 무슨 재주만 부리고 그러는게 아니고 무술이 나으니까 그런겁니다 그런데 지금 이 책에 고증한게 책이라고 한다면 무예도보(武藝圖譜)2) 서문을 보십시요 이 내각판(內閣板)3)에 무예도보 서문(序文)을 보십시오.
…조때라고 우리나라에서 문장으로 손꼽는 박제가(朴齊家) 그 어른이 어명을 받아 가지고 여기 서문을 냈는데 “우리나라에 그전에는 무기가 없었다. 우리나라가 그전에는 무기가 없었고 무예를 몰랐는데 중국서 나온 그 무예를 그대로 배웠다.”는게야. 그러니까 무슨도(刀) 무슨도 무슨도라는게 .. 까정 가르치고 뭣하고 뭣하고 하는 것이 여섯가진가 되는데 일본 …. 놈들이 일본놈들이 쓰던 칼 그 일본도도 좀 있다 이래서 말썽입니다.
  그렇게 그전에 무예가 하나도 없었으면 어떻게 당나라에서 나오고 수나라에서 나왔는데 거침없이 당했을까요? 여기 무예가 그렇게 없었으면 그러니 내각판으로 … 은 임금이 명령해 가지고 내라했으니 너 서문을 …당대의 한(큰) 문장으로 …. 우리나라의 재래역사 체육사(體育史) 무슨사 우리 역사를 알게 되면 그렇게 쓸리가 없어요. 한심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여기 지금 사학자(史學者)들이 보면 아 이거 봐라 내각판에 해 놓은 것이 이렇게 썼는데 이런 증거가 있는데 그게 무슨 소리냐? 그 전에 뭐가 있느냐? 이 소리를 으레껏 하게 됩니다
 

2) 조선 정조 때 이덕무(李德懋)·박제가(朴齊家)·백동수(白東修) 등이 왕명에 따라 편찬한 종합무예서. 4권 4책. 목판본. 1790년(정조 14)에 완간되었다. ≪무예통지≫·≪무예도보≫·≪무예보≫라고도 한다.
3) 옛날 규장각(奎章閣)에 있던 철주자로 판을 짜서 박은 책(冊) 

 
 
 
–봉우권태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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