ㅉㅉㅉㅉㅉㅉ……………………..군내부 종북 좌익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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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 주둔 8연대 제 2대대장 강태우 소령 대대의 월북.’
홍천 주둔 국군 제1여단 제 8연대 소속 2대대장 강태무소령도, 괴뢰군과 미리
내통하여 그 지령 하에200여 명의 부하대원을인솔하고 1949년 5월 3,4일 양일간에 걸쳐38선 참호 구축공사를 하다가,5일 새벽 1시에는 38선까지 12km 지점인 ( 縣里,오대산 기슭)주둔군 약100명을 합하여 총 300여 명을인솔하고38선경비’라는 명목하에5월5일 오후5시 하답(下畓,38선 접경)에이르렀습니다.
 
그리고는 괴뢰군의 내습이 빈번한 ‘북죽개봉’에 있는 괴뢰군 보안대를 공격한다고
대원들을 속여 38선을넘었고, 북한 지역인 인제로부터 6km 남방 지점에서 괴뢰군의 사격을 받았습니다. 강태무 부대는 곧 교전상태에들어갔으며 약 1시간에 걸쳐서 치열한 교전이 전개되었습니다. 그리고오후 6시, 강태무 송령은 “포위되었으니 무기를 버리고 백기를들고 투항하라”고 부하들에게 외쳤습니다.
 
김인식 8중대은 투항하라는 강태무의 말을이상하게 생각하여 중화기 중대 제 5,7,중대와 함께 반기를 들고 장렬히 대항하였습니다.그러나 제 5중대는 거의 전멸 상태에이르렀으며,장교 2명과 병사136명 모두 138명이 탈출에성공하여M1소총81정 칼빈소총46정,경기관총 2정, 기타기관포,로케트포 등4문을 가지고 홍천 기지에 돌아왔습니다.(경향신문 1949년 5월 8일자,동아일보 1949년 5월 11일자)
 
또한 5월 10일,해군 제 2특무정대 508명( 사령관 황운서 중령,정장 이기종 소령)
 
이 주문진근해의 경계임무를 띠고 부산을 출항하여 익일 포항 해상에 이르렀을 때, 좌익계가 일반사병을 내무반에 감금하고 사령관과 정장을 사살한후 월북했습니다.강 소령은 월북후 제 766군 부대 예하의 제 424, 제 200부대장으로 있다가 표무원 부대는1950년6월25일 강원도 임원진으로 상륙 침투하여 국군의 후방을교란하였습니다. 강태무 소령은 월북후 소장(국군의 중장에 해당)으로 승진,
 
2006년 4월 15일 81세로 사망하였고, 표무원 소령은 2007년 6월 17일 82세로 사망하였습니다.
 
강 대대의월북 사건은 상관의 명령이라 해도 그것이 반(反)국가적 행위를 강요할 때는 결단코 이에 항의하고 정의를 위하여신명을 바쳐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준 점에서, 여수 순천 반란 사건과는 달리 군에 대한 신뢰감을 북돋워주기도 하였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군 내부 불순분자의 색출을위한 숙군은 더욱 강화되었습니다.5중대는 거의 전멸 상태에 이르렀으며,장교 2명과 병사 136명 모두138명이 탈출에 성공하여 M1소총 81정 칼빈소총46정,경기관총 2정, 기타 기관포,로케트포 등 4문을 가지고 홍천 기지에 돌아왔습니다.(경향신문 1949년 5월8일자,동아일보 1949년 5월11일자)
 
또한 5월 10일,해군 제2특무정대 508명( 사령관 황운서 중령,정장 이기종 소령)
이 주문진근해의 경계임무를 띠고 부산을 출항하여 익일 포항 해상에 이르렀을 때, 좌익계가 일반사병을 내무반에 감금하고 사령관과 정장을 사살한후 월북했습니다.강 소령은 월북후 제 766군 부대 예하의 제 424, 제 200부대장으로 있다가 표무원 부대는1950년 6월 25일 강원도 임원진으로 상륙 침투하여 국군의 후방을교란하였습니다. 강태무 소령은 월북후 소장(국군의 중장에 해당)으로 승진, 2006년 4월 15일 81세로 사망하였고, 표무원 소령은 2007년 6월17일 82세로 사망하였습니다.
 
강 대대의월북 사건은 상관의 명령이라 해도 그것이 반(反)국가적 행위를 강요할 때는 결단코 이에 항의하고 정의를 위하여신명을 바쳐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준점에서, 여수 순천 반란 사건과는 달리 군에 대한 신뢰감을 북돋워주기도 하였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군 내부 불순분자의색출을 위한 숙군은 더욱 강화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