性과 氣 그리고 理

性은 유전자이다.
유전자는 유전정보와 유전물질로 나눈다.
性은 유전정보를 의미한다.


氣는 물질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氣는 에너지도 의미하기도 한다.(기운이 없습니다=힘이 없습니다..등)
氣는 물질과 에너지로서 물리학에서 이야기 하는 “질량”이다.
힉스입자는”질량 그 자체”이다.
氣學은 유물론이다.
유물론은 자연과학과 칼맑스의 유물론 또는 시회과학을 통칭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理가 먼지인가? 氣가 먼지인가?
이 논쟁은 서양의 관념론과 유물론의 논쟁과 형식에서는 같다고 보면된다…
물질vs정신
이것을 동양적으로 이야기 하면 氣學vs理學이 된다.


서양의 “정신”과 동양의 “理”는 그 의미가 조금 다르다.


모든 물질에는 性이 있다는 것이다.
물질들은 관계를 맺으면서 모였다 흩어졌다를 반복한다.
이러한 관계들은 性이 전제되어야 한다.
性은 음양을 의미하다.
음양은 인연으로 서로 관계하는 것이고…


인간의 언어를 배제하고, 순수하게 내 밖에 理가 먼저 있었는가? 氣가 먼저 있었는가?
無가 먼저인가? 有가 먼저인가? 의 물음과 다르다.
理는 원리이다.
원리가 태극이라는 것이다.


정신이 먼지인가? 물질이 먼저인가?의 물음은 그렇게 어렵지가 않다.
말씀과 창조주가 있고, 창조의 원리에 따라서 만물이 창조되어야 한다.
헤겔식으로 말하면 “존재와 무”->소멸->생성->현존재…
최초에 “존재와 무”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진행”되어 가는데, 진행되어 가는 원리가 “변증법”이라는 것이다.


理가 氣보다 앞선다고 보아야 한다.
말씀과 창조와 함게 창조원리가 있어야 한다.
존재와 무에서 진행되어 가는 과정이 원리이다.
원리는 氣는 함께 있다…氣는 원리를 따른다.


理學은 “존재론”이 없습니다.
“원리”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원리”도 형이상학에 속한다.


氣學이 형이하학이고 과학이 되는 것이다.


理를 내 안으로 가지고 들어오면 서양에서 말하는 “이성”이 된다.
헤겔의 의식이 경험해 가는 도정{정신현상학]….감각적 확신->지각->지성(오성)->이성->정신(절대지)
이성이 변증법적 시유 또는 시변적이라고 하는 시유방법이다.
변증법은 “변화의 법칙”을 의미한다.
理도 원리로서 氣가 변화해 가는 법칙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원리를 “태극” 또는 “뒤바뀜”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
.
자연도 법칙에 따라 변화해 간다.(어떻게 알 수가 있는가?…등의 물음)
인간의 의식도 단계를 거쳐서 올라가면 이성의 단계에서는 자연과 시회..정신등의 변화의 법칙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공통된 법칙이 “변증법”이고….

주렴계는 무극,태극,理를 어떻게 알 수가 있었는가?
이렇게 자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서양철학의 특징이다.
동양은 감성적, 직감적으로 자연의 법칙을 이해한 것이고…

동양의 자연철학과 서양의 정신철학은 그 시유방법이 다르다는 것이다.
동양은 느낌이 많이 좌우하고, 서양은 분석적이라는 것이다.
.
.
유전정보는 변화하지 않는다.
유전정보는 짝짓기를 통해서만 변화해 가는 것이다.
하나의 개체가 세포분열을 통해서..하나의 개체가 되면 유전정보는 변화하지 않는다.
유전물질은 계속 변화한다.

유전정보가 변화해 가는 것이 진화일 것이다.
외면적인 형태의 변화가 정지했다고 해서 진화가 멈춘 것은 아닐 것이다.
인간도 계속 유전정보가 변화해 가고 있다.
그렇다면 진화는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를 듯 하다!
진화가 직선운동에서 순환운동을 한다는지…등의 차이는 있을 수가 있겠지만…

성의 진화가 理로 이행해 가는 것이다.
인간의 “언어” 또는 “령혼”도 진화의 결과이다.
앎의 진행이 理의 진행으로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의식이 경험해 가는 도정일 수도 있고…
인간은 알아 간다는 것이다.
그 대상이 자연이던,시회이던,인간 육체이던…자기자신이던…
이것이 의식이 경험해 가는 도정이다!

性에서 理가 발현되어서 나오는 것은 바른 말이다!
理는 氣를 따라가면서 氣를 알아가는 것이다.
(理는 氣를 따라가다가, 氣를 넘어서 理 또는 자기 자신을 알아 가게 된다는 것이다)

性과 氣는 함께 있고, 理는 性에서 발현되어 나온다.
理는 氣의 그림자(혼)이고…氣를 따라가면서 氣를 알아가는 것이다.
氣를 알아가는 것은 우리는 자연과학이라고 하고, 유물론이라고도 한다.
정신에 앞서서 氣가 있다는 것은 일견 바르지만,,,理는 氣를 넘어서 간다.
즉 원리(법칙)성을 알고, 氣를 통제,관리…할 수가 있다.

氣學과 理學의 문제
유물론과 관념론의 문제

이 둘의 종합이 중요하다.

유물론이 광하면 민주주의 또는 개체화가 되고,
관념론이 광하면 절대주의 또는 전체화가 된다.
이 둘의 조화가 중요하다.

한국는 유물론이 광하고,
북한은 관념론이 광하다.(주체시상)

정치가는 관념론을 넘어선 유물론자가 되어야 한다.
인민들은 물질적인 삶이 최우선이고, 이것에 맞추어서 의식 그리고 도덕으로 이행해 가야 하는 것이다.
정치가는 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경제가 우선되어야 하고 경제학에 철저한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법(입법,시법,행정…등)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인민들의 실질적인 삶의 향상,진전,,등이 목적이고 이것을 위해서 정치가 있는 것이 아니던가!
누구를 위해서 정치를 하는가?

변화의 법칙은 운동의 원리이다.
운동의 원리가 변증법이다.
운동 그 자체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운동의 원리는 물질들의 변화의 법칙에 의해서 알 수가 있다는 것이다.

理는 태극(뒤바뀜)이고,
헤겔의 이성은 “정립-반정립-종합”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긍정-부정-부정의 부정의 법칙”(되돌아 감의 원리)
그리고 “음양”…등

성의 역시와 리의 역시
性理
리차드도킨스의 “유전자와 밈”…
밈을 문화로 설명하고 있는 듯 하다..
문화는 자연과 심성,정서의 문제이고..(물론, 생산력의 변화와 의식의 변화에도 영향을 받는다)
밈 대신 理(의식=앎의 수단)를 놓으면 “성과 리”가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