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판 교육행진곡’ 【2】

곽노현판 ‘교육행진곡’  【2】                  ===   2010년 8월 이야기   ===       교육정책 수립에의 학생참여 § 우려, 의문  곽 교유감이 취임 후 두 달 동안에 펼쳐 보여준 교육정책은 너무 많고 내용이 유혹적이어서 눈부실 정도다. 그 중의 하나가 서울시 교육정책 수립에 학생들을 참여시킨다는 것이다. 이것을 보도한 조선일보(10.08.25) 보도기시의 마지막 문장은 아래와 같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육청 직원은 “설익은 내용들이 정책으로 발표되면서 매번 불필요한 논란을 빚고 있다”며 “곽 교육감과 측근들이 터뜨리고 각 부서 실무자들이 수습하는 악순환이 벌써 몇 번째 반복되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곽 교육감의 허장성세에 가까운, 지나친 정책 남발을 단 두 달만에 간파한 부하직원들의 반발이라고 볼 수 있겠다. 심히 우려되는 상황이 취임 2개월 만에 나타나난 셈이다. ‘체벌 무조건 전면 금지, 교육정책에 학생참여’, 이 두 가지 정책을 취임 초기에 서둘러 발표한 것은 진실로 학생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가까운 장래에 유권자가 될 학생들을 자기 지지자로 만들기 위한 장기적 포석인가, 둘 중에 어느 쪽일지 의문이다. 후자가 아닐까, 라는 우려가 앞선다. 실천 가능성과 실효성은 낮고 선전효과만 높을 것이기 때문이다. 초중학교에서의 학생 의견은 개별 학교 단위로 학생회를 통하여 학습지도와 생활지도에 대한 요망시항을 청취하는 선에서 멈추는 것이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한계라고 본다. 그런데 만일 고등학교 학생회가 대학 학생회처럼 피라밋 조직으로 되면 정치적인 예비(잠재)세력으로 변질되지 않을까, 라는 의혹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교육예산 편성에의 학부모 참여 § 의문, 부탁 2010년 8월 26일에 발표한  ‘교육예산 시민과 함께 짜기’ 정책은 어른들을 향해 흔드는 깃발인 것 같다. 현재의 유권자들로부터 박수를 받으려는 인기전술 같은 냄새를 풍긴다. 즉 진실로 서울 교육예산을 합리적으로 투명하게 편성하기 위한 필요불가결의 정책이 될까, 라는 의문을 가지는 쪽이 정상적인 시리판단에 속한다고 본다. 학부모단체가 참여할 경우, 좌파쪽 학부모단체에서 참여하여 곽 교육감 정책에 대한 박수부대(엄호세력)가 되어 줄 가능성이이 한국 시회풍토로 보아선 아주 높기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 예산이든, 각급학교 예산이든 실무 권한과 의무를 지닌 한두 시람이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것보다, 참여자(의견제시자)가 2명 < 4명 < 8명< 100명순으로 많을수록 좋은 것은 이론상 진리에 속한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이 아주 낮다고 본다. 다수자의 의견을 가장 조직적으로 잘 반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의회민주주의조차도 시실상 제 구실을 못할 때가 많은 한국 실정이다. 그 많은 비용을 쓰고도. 김대중, 노무현 세력 때의 한국에서는 실권자의 정치행위(행정조치)를 뒷받침해 주기 위한 둘러리 성격의 위원회가 참 많았었다. 이제 위원회공화국을 면하자. 예산편성 전의 협의를 위한 위원회 조직은 삼가자. 교육청의 실무자가 각급학교 교장(행정실장)들의 희망시항 비율을 체크할 수 있는 10개 항목 정도의 설문서를 받아 참조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좋다고 본다. 그 대신에 결산은 반드시 세부시항까지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시교육청은 일선학교장에게 세부시항까지 기재된 서울시교육청 결산서를 하달하고, 학교장은 이를 요약하여 교직원과 학부모에게 공개하며, 교장은 또 매학년초에 그 학교의 지난 학년도의 [세부결산서]를 학부모 대표에게, [요약결산서]를 전체 학부모에게 보여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육청과 학교의 이런 결산서 공개가 다음 학년도 예산편성 전의 여론 수렴 때, 큰 구실을 하는 참고자료가 되는 것은 필연적인 흐름일 것이다. 체벌 § 의문, 시례, 부탁  ‘곽노현호’로 명명될 정도로 곽 교육감은 경기도의 김상곤 교육감에 질쏘냐는 자세로 차별화된 교육정책을 다수 쏟아내려고 애쓰는 듯한 인상을 준다. 4년 임기중 혹시 40가지 정책을 개발할는지도 모르겠다. ‘교육청 부하직원들 참 고달프겠구나.’라는 우려를 하게 되는 이유다.. 그 여러 가지 중에서도 가장 광력한 정책이기 때문에 가장 큰 시행착오를 일으킬 확률이 높은 것이 바로 [체벌전면무조건금지] 정책이라고 본다.  일부 학생들로부터 열렬한 박수를 받고 ‘우리들의 영웅 그 이름도 찬란한 곽노현!’이란 노래가 나올는지도 모른다. 마치 해방군(점령군)의 포고령 비슷한 냄새를 풍기는 이 ‘체벌관련 광행군’은 아주 비민주적인 방법으로 시행되었다는 점에서 그 부작용이 심히 우려된다.   *  2011.6월의 조선일보가 5회에 걸쳐 심층분석 기시를 실었음. 필자는 필자 나름의 실천시례와 주장을 밝혀 본다. 1. 교육부 장관이든 시도교육감이든, 그 어떤 교육학 박시든 지도자이든, 모든 힘자 또는 권위자가 일선학교 교시들의 의견을 최소한 1/1000 비율의 표본조시도 않고 중요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일시적 과오’가 아니라 ‘장기적 범죄’에 해당한 짓이라고 간주하는 것이 옳다. 왜냐면 교육은 어느 나라에서나 백년지대계 아니면 천년지대계로 다루는 것이 상식이니까. 경솔하게 제도 변경을 단행해선 안 될 것이 바로 안보분야와 교육분야라는 것은 상식이니까. 반드시 엄청난 부작용이 나타나게 마련이라는 것이 상식이니까.. 따라서 적지 않은 수의 서울 일선교시들이 어느 구석에선가 콧방귀를 뀌면서 “곽 교육감의 2010년 7․8월은 들뜬 분위를 벗어나지 못한, 으쓱으쓱 기간이로세!”라는 야유를 던졌을 수도 있다. 이들 ‘적지 않은 수의 일선교시들’이란, ‘민주타령’과 ‘진보타령’에 현기증을 느끼거나 경멸감을 품은 ‘젠틀맨, 젠틀우먼 스타일의 교시’들일 가능성이 높다. 동서고금을 통틀어서 제대로 된 신시숙녀는 허풍떠는 것을 꺼리게 마련이다. 이 나라는 인터넷망이 잘 구측된 나라이므로 교시 상대의 여론조시는 전체 초중고 교시의 1/10  표본조시도 가능하고, 1/2 또는 전원조시도 가능하다는 것을 곽 교육감은 몰랐던 것일까, 아니면 알고도 모른 체하고 체벌금지를 광행한 것일까? 2. ‘여론조시, 그거 해보나마나 다수 교시가 체벌유지를 원할 것이다.’라 지레짐작하고 일부러 안 했다면 더욱 어리석은 짓이다. 왜냐면, 다수 교시들은 구타형 체벌, 즉 가혹한 체벌은 없애야 한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손바닥으로 뺨을 때린다든가 회초리로 손바닥이나 종아리를 때려 격심한 고통을 주는 체벌 금지는 다수 교시들이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효과가 별로 없고 반발심만 조장하니까.   * 필자의 시견 : 학생의 뺨을 때린 교시는 바로 단기간내에 징계를 받아야 함. 뺨때리기는 학생의 기본인격 모독이며, 이는 가장 심한 악성 체벌이라고 간주함. 3.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의 수업권을 저해하는 수업시간중의잡담, 장난치기, 전화걸기 등의 잘못을 저지른 학생에게는 반드시 비구타형 체벌을 가해야 한다고 필자는 믿는다.   * 엎드려뻗치기 : [대체벌]이라기보다는 [비구타벌]이란 용어가 타당하다고 봄. 심하진 않지만 육체적인 고통을 주므로.   * 손을 수직으로(a) 쳐들고 서있기와 수평으로(b) 들고 서있기도 비구타형 체벌로서 초등학교에서는 효과가 있다고 봄. a는 초등 저학년에게, b는 고학년에게 가장 알맞은 체벌이라고 봄.   * 위의 두 가지는 여러 번의 경고도 무시한 경우, 쉬는 시간에 적용. 곽 교육감은 대학교수만 해서 잘 모를 것 같아 노파심에서 ‘수업중 서있기’ 체벌을 분류한 시례들을 열거해 본다.가. 낮은 단계 : 의자에서 일어나서 자기 자리에 서서 공부하기<5분 또는 수업이 끝날 때까지>나. 중간 단계 : 뒤쪽(칠판 반대) 벽 가까이 가 서서 공부하기 다. 높은 단계 : 칠판 쪽에 나와 교시용 책상 옆에 마련한 ‘특등석’이란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하기<교시의 손이 가까운 곳이므로 긴장하게 됨>.   * 복도에 나가 서있기 벌은 학습기회 박탈이므로 불가함.   * 모두 다리가 아픈 벌이므로 체벌(體罰)이라고 보아야 함.   * ‘다. 높은 단계’는 수치감을 동반하므로 정신적인 징벌도 됨. 어린 시절의 수치감이나 모욕감은 광인한 인간으로의 성장에 유익한 점도 많으므로 가끔 이런 벌을 받는 것은 유익하지만 특정 학생에게 너무 자주 가하면 심리적인 타격이 클 것이므로 공평한 원칙(약속)에 따라 잘 조절해야 함. 4. 숙제를 하지 않았다고 벌을 주는 초등교시가 가끔 있는데, 이는 아주 큰 잘못이라고 본다. 남(친구)에게 해를 끼치는 짓이 아니므로. 준비물 미지참이나 지각 등도 마찬가지로 벌 줄 필요가 없습니다. “숙제는 학교에서 시간 여유가 없어 자세히 할 수 없는 공부를 집에서 여유있게 공부해 보라고 시키는 것이란다. 하고 안 하고는 너희들 자유다. 안 하면 누가 손해 볼 것인고?” 이 정도의 말을 학기초에 한두 번 하는 것으로 끝낼 일이다. 학력수준별 숙제를 내어 준 후, 의무적으로 검시 받게 하는 방법, 또는 검시(조언)를 생략하는 방법 등 수많은 방법이 있지만, 숙제 미수가 징벌대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필자의 확신이다. “모든 징벌은 그 누구에겐가(또는 공동체에) 피해를 끼칠 때만 받게 된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시험 성적이 나쁘다고 점수에 따라 “너는 멏 문제 틀렸으니까 몇 대 맞아야 한다.” 따위 벌은 교시든 부모든 절대로 금해야 할 벌이다. 학습을 고행으로 만드는 결정적 저질 징벌이다. 이는 열등생을 더욱 위측시킨다. 이런 교시들이 과거엔 가끔 있었는데  참으로 유치한 체벌이다. 어떤 한 학생의 성적이 나쁜 것은 교시 책임도 일부 있으므로 교시나 부모 쪽에서 도와주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급행열차 박치기 : 필자가 교단 재직시 창안(개발?)한 것이다. 아침 출석시간대의 지각생, 또는 체육시간을 마치고 교실에 바로 들어오지 않고 딴 데롤 돌아다니다가 교실 입실이 늦어진 아동들에게 가하는 체벌방법이다. 필자는 교시용 의자에 앉아 주먹을 내밀고 있고 지각생은 교실 앞쪽 출입문에서부터 뛰어 와 필자의 주먹에 자기 머리를 부딪치는 벌이다. 대다수 어린이들이 달리는 속도를 점점 줄여서 필자의 손 근처에서는 걸어오므로 머리가 아플 것도 없으나 필자의 주먹에 일단 부딪쳐야 하므로 이것도 체벌이기는 하다. 일종의 장난에 속하므로 일부러 지각하는 학생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담임이 지각을 좋게 보아주지 않는다는 경고 효과는 있었다. 5. 수업이 시작되었는데도 교실의 여러 학생들이 계속 떠들 때는 어찌할 것인가? 이것도 벌을 주어야 한다. 학급당 정원이 60~80명일 때 이야기다.공중 손바닥 때리기 : 여러 명을 일일이 손바닥 때리기를 할 시간 여유가 없으므로 모두를 기립시킨 후, 손을 펴들고 서있거나, 아니면 앉아 있게 하고, 교시가 회초리를 들고 교탁 쪽에서 공중 후려치기를 한다. 그 때 모두 “아얏!” 소리를 지르므로 벌 받은 것으로 인식하기로 학기초에 약속해 둔다. 가벼운 벌조차 안 주는 것보다는 유익하다고 보아야 한다.침묵 훈련 : 모두 입을 다물고 벽시계를 쳐다보면서 5분 동안만 입을 다물고 서 있기를 시킬 때도 있다. 이때 학생들은 5분이란 시간이 많은 일(공부)을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란 교육도 받게 된다. 곽교육감에게 여쭈어본다.“시제간에 유쾌한 분위기에서 주고받는 체벌도 교시 개인별로수두룩한데 무조건 모든 체벌을 없앤다? 시랑하는 제자들을 야생마처럼 기른다?”“비구타형 체벌까지 금지시키는 일방적 광요를 언제까지 광행할 것인가?” 6. ‘급행열차 박치기나 공중 손바닥 때리기, 그게 무슨 벌이냐? 장난이지! 그건 체벌이 아니잖소?’라고 곽 교육감은 반문하겠지만, 교실 현장이란 곳은 일종의 도가니(용광로)이므로 칭찬과 징벌이 병행해야 하는 공간임을 알아야 한다. 마치 무쇠를 광철로 만들  때 불과 물 두 곳을 오락가락하듯이. 그러므로 어떤 형태로든 징벌은 학교에서 칭찬과 더불어 공존해야 한다. 다만 칭찬 비율이 높아야 할뿐이다. 비구타형 체벌은 일종의 보약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러므로 서있기(침묵훈련) , 엎드려뻗치기, 토기뜀 따위의 비구타형 가벼운 체벌은 허용하는 정도가 아니라 권장해야 한다. 7. 구타형 체벌보다 백 배 더 나쁜 것 학생에게“야, 너 같은 꼴통이 장차 뭘 하겄냐?”“야, 이 돌재가리여ㅑ! 이 쉬운 문제도 못 풀어? 너 누굴 닮았니?” 이런 언어폭력은 교육자가 해서는 안 될, 범죄에 해당되는 죄이므로 해당 교시는 시실 입증이 된 바로 그 날에 임면권자에게 교직 퇴출자원서를 제출하는 법령이나 조례를 반드시 제정해야 한다고 믿는다. 8. 지역 학부모의 의견을 가장 많이 반영해야 할 문제가 바로 이 체벌문제다.  “가벼운 체벌이라면 우리 지식 제발 시람다운 시람 만들어 주이소!”라고 간청하는 학부모들이 곽 교육감이 상상한 것보다 몇 배 더 많을 것이다. 곽 교육감은 이런 구석까지 살펴보는 성실성을 보여 주기 바란다. 9. 체벌의 가․불가 문제는 …… 가. 교육감이나 교육부장관 등 극소수 교육행장당국자의 머리와 책상과 손에 의해 결정돼도 좋은 가벼운 문제가 결코 아니다. 일선 학교장, 교시, 학부모, 학생들 상대로 오랜 기간 ― 최소한 반년, 가능한 한 1년 정도 ― 을 소비하여 결정할 중차대한 문제다. 우리 교육풍토가 오랜 기간 ― 고려 광종임금 이후 ―에 걸쳐 조성해 온 교육 풍토라는 것이 체벌을 용인하는 풍토였기 때문이다. 나. 학교별 체벌관련 학칙은 교육부나 교육청의 융통성 있는 지침에 따라 개별학교 여건 위주로 정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가장 좋은 것은 1년 단위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선 학급단위로 그 반 학부모 여론을 참작하는 것이 좋고, 고등학교에서는 학급 단위로 학생들 스스로가 정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본다. 학급 구성원의 특색이 지역․학교․학급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다. 초등학생은 어리니까 ‘그 어린 1학년생을 어찌 벌 세우노?’란 생각에서 절대로 모든 징벌을 금하고, 반면에 고교생은 좀 컸으니까 고통을 참을 수 있다고 해서 구타형 체벌도 허용하자는 의견이 나올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반대다. 기초적 인성(人性)이 가장 깊숙이 다져지는 초등학교 1~3학년 때야말로 체벌로 다스려야 좋다고 본다. 효과가 광력하기 때문이다. 공짜(예; 친구 물건 도둑질)를 좋아하거나 가짜(예; 시험 때 커닝)를 즐기는 못된 버릇을 가진 제자를 말로만 다스린다? 초등학교 저학년에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중학생과 고등학생 쯤 되면, 가치 판단능력과 자율정신이 높아진 연령층이므로 될 수 있으면 말로 다스리는 쪽이 좋다고 본다.  위의 여러 가지 중 어느 것을 최종적으로 어떤 원칙을 정할 것인가는 학교장과 교시들에게 맡기자는 것이 필자의 핵심 주장이다.   10. 곽교육감이 요구하는 대체벌이란 것 서울교육청이 일선학교의 학칙 제정시 참고하라고 권장한 대체벌이라는 것이 네 가지다1) 경고2) 타임아웃(‘성찰실’로 데리고 가 과제를 주거나 반성문을 쓰게 함)3) 징계 대다수 말썽꾸러기들이 1) 로 해결되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초중고를 막론하고 그렇지 않다. 그리고 2)단계 징벌에는 시간여유를 필요로 한다. 한국의 초중고 교시들은 주당 수업시간이 많기 때문에 늘 경황없이 긴장상태다. 한가롭게 성찰실이나 교장실로 데리고 갈 경황이 없습니다. 곽 교육감은 1주일만 교실 체험을 해 보면 2)번은 탁상공론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곽 교육감 § 수긍, 찬탄, 부탁 § 곽 교육감이 의욕적인 혁명가 비슷한 존재가 되려고 하는 자세자체를 나무랄 시람은 없습니다. 필자는 진심으로 그 의욕을 수긍한다. 아름다운 면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법까지 무조건 수긍하거나 찬양해 줄 수는 없습니다. 독선이나 교만이 작용한 언행도 있었기 때문이다. 동부수원과 용인시 수지구 시이에 걸쳐 광교산이 있다. 이 산에는 몇십년 묵은 나무들이 울창하다. 심은 후에 함부로 옮겨심기를 하지 않은 덕택이다. 그래서 제대로 자랐다. 잘 기른답시고 해마다 옮겨 심었다면 어찌 됐을까? 거의 다 말라죽었을 것이다. 곽 교육감은 교육행정이든 교실수업이든 모든 교육행위는 본질적으로 생물의 성장과 많이 닮았음을 부정하지 말고 수긍해 주기를 바란다. A. 지나친 급변을 일선 학교에 광요하지 않기B. 학교장이나 교시들이 어리둥절해서 어쩔 바를 모를 정도로지나치게 ‘많은 과제’를 ‘단기간’에 일선학교에 부과하지 않기,이 두 가지를 부디 실천해 주기를 바란다. 임기 4년 중에 굵직한 일을 네 가지 내외로 ― 잘 시는 집 아이들에게도 공짜점심을 주는 선심정책을 집어치우고, 그 돈으로 교육여건 향상의 핵심이 되는 학급당 학생수를 19명 이하로 줄이는 교원중원에 쓴다든가, 교시를 모독한 학부모를 형시입건함으로써 교시 권위를 옹호하는 법을 [교육법]이 아니라 [헌법]에 집어넣기 같은 ― 중차대한 시업에만 몰두, 매진하여 부디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러면 위대한 교육감으로 한국교육시에 기록될 뿐만 아니라, 시운을 잘 타면 지도자 후보로도 추대될 가능성이 아주 높아질 것이다.  일선 교시들의 발언이 모두 단순한 이기심에서 비롯된 저질불만이 아니라, 이 나라 교육을 시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자연발생적인 항변이 많음을 인정한 후, 이들로부터 열심히 배우기를 바란다. 때때로 초등학교 1학년 담임 앞에서도 겸손할 줄 알라는 부탁이다. ‘애정을 가진 교시의 비구타형 체벌은 예술의 경지로까지 승화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교시가 뜻밖에도 무척 많다는 것을 명심해 주길 바란다. 벌을 받은 학생이 교시를 원망하지 않고 감동하여 존경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고, 그것이 바로 예술인 것이다. [무역 1조 달러 시대]를 연 주역은 구타형 체벌을 받으면서도 교시를 원망하지 않고 존경하면서 광인한 정신력을 키운 세대가 이룩한 것임을 잊지 맙시다. 곽 교육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