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트리온 주주들은 농부입니다

대략 1만 년 전까지 수렵 채집으로 살아가던 원시 시대의 인류는 농업을 몰랐습니다. 농사짓는 법을 몰랐기에 수확의 기쁨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씨앗이 땅에 떨어지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누군가가 발견했습니다. 그 후로 수렵 채집의 관습을 버리고 농경 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인류의 패러다임을 결정적으로 변화시킨 기회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설명은 진화론이 그 바탕입니다. 

진화론이든 창조론이든 간에, 어쨌든 봄에 씨앗을 심으면 싹을 틔웁니다. 그 싹이 자라서 여름날의 비바람 뙤약볕을 견딜 때, 비로소 더욱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만고의 진리입니다. 하물며 좋은 땅을 발견한 농부라면 어찌 그 땅에 씨앗을 뿌리지 않겠습니까? 

국민연금이 거들떠 보지도 않던 시절, 소액주주들은 좋은 땅 셀트리온을 먼저 발견했습니다. 좋은 땅에 씨앗을 뿌리는 게 당연하듯 각자가 가진 종잣돈을 셀트리온 옥토에 기꺼이 심었습니다. 소액주주들이 정성껏 심었던 종자들에서 싹이 나고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그래서 기쁜 겁니다. 싹이 나서 자란다는 것은 곧 희망이 커가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가끔 태풍이 불어오고 벌레들이 잎사귀를 갉아먹어도 괜찮습니다. 태풍은 지나가면 그뿐이고, 벌레는 잡아주면 되거든요. 

농부는 땅을 속이지 않습니다. 땅 또한 농부를 속이지 않습니다. 농부가 열심히 일하면 땅에서 열매를 얻듯이, 땅 또한 농부가 정성을 쏟은 만큼 풍성한 수확으로 보답합니다. 셀트리온 독개미들과 셀트리온이 바로 이런 관계입니다. 

물론, 농부에 따라서 농사가 힘들면 땅을 팔고 떠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떠났던 농부들이 떠났던 땅이 그리워서 다시 돌아오기도 합니다. 그게 바로 좋은 땅이 주는 매력입니다. 그 매력에 빠지면 절대로 땅을 떠나지 않습니다. 한 평이라도 더 가지려고 노력할 뿐이죠. 오늘도 셀트리온 독개미들은 한 평이라도 더 가지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 농부들에게 누가 저주를 할 수 있으며 누가 악담을 퍼부을 수 있을까요? 그 혓바닥으로 농부가 지은 열매를 먹는다는 게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영국의 국민화가로 여겨지는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라는 분을 아시나요? 그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를 그리고 싶었답니다. 그래서 폭풍우 치는 날이면 바닷가에 나가 유심히 관찰하고 화실에 돌아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흡족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큰 결심을 하고 항구를 찾아가 출항하는 배의 선장에게 뭔가를 부탁하고 그 배에 승선했습니다. 배는 출항했고 항해 중에 무서운 폭풍우를 만났습니다. 선장은 그를 마스트에 매달았습니다. 그가 선장에게 부탁한 것은 폭풍우를 만나면 자기를 마스트에 묶고 폭풍우가 멈출 때까지 내리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폭풍우에 맞섰고 비와 바람에 젖었고 폭풍의 일부가 되었고 나중에는 폭풍우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폭풍우와 하나가 된 체험을 한 다음에 그는 비로소 만족할 수 있는 명화를 그릴 수 있었답니다.

윌리엄 터너는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를 화폭에 담기 위해서 폭풍우와 하나가 되는 체험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셀트리온 독개미들 또한 농부의 마음으로 서로 하나가 되는 체험을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그것을 돕는 폭풍우와 같은 역할을 누가 하고 있는가 하면, 바로 안티 혹은 악티 양아치들입니다. 그런 양아치들이 설칠수록 셀트리온 독개미들은 더욱 강하게 뭉칠 겁니다. 그걸 역사학자 토인비는 도전과 응전으로 설명했고, 물리학자 뉴튼은 작용과 반작용으로 설명했죠. 결국 셀트리온 독개미들 각자가 간절히 바라는 때, 즉 열매를 수확하는 때가 언젠가는 도래할 겁니다. 바로 그것이 진짜 팩트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