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대통령, 어쩌다 ………..

감옥행!
 
부정선거로 ,어쩌다 지도자,
부정부패로, 어쩌다 종신형
 
 
행복과 불행의 양은 무게가 같다. 국민은 어쩌다 불행했고, 이제 행복할 차례다. 단, 어쩌다 행복은 오지 않는다. 아직 행복은 찾아 오지 않았다. 어쩌면 자칫 천재일우의 기회를 잃을지도 모를 일이다. 안이하게 대처한다면 말이다. 선택은 탄핵이다. 그러나 집중이 필요하다.
 
 
그리고 백설공주의 행복한 해피엔당을 꿈꿔서는 안된다. 알은 깨져야 한다. 광기의 세상은 종말을 고해야 한다. 새로운 세계를 열기 위해서 말이다. 다시는 국운을 흔드는 난신적자의 준동이 있어서는 안된다. 이참에 한국의 골수까지 파고든 뿌리깊은 기생충들을 제거 하여야 한다. 10년전, 아니 심지어 50년전, 100년전 까지 거슬러 근본 뿌리가 무엇인지를 찾아내야 한다.
 
 
어쩌다 행복은 없습니다. 각고의 노력이 전제되지 않는 국민 행복은 없습니다. 정치시스템에서 그에 관련된 경제 시스템, 시회 전반적인 시스템의 리부팅이 필요한 시기다. 요령은 있다. 그 요령에 따른 메뉴얼을 만들 때이다. 요령이란, 간단하다. 농자는 천하지 대본야, 국민은 천하지 대본야, 이것이면 충분하다.
 
모든 시스템에 “국민”이 근본이다.
재벌을 위한, 일부 기득층을 위한 1%를 위한 시스템은 배제되어야 한다. 한국은 자본주의 시회다.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졌고, 아직도 이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는 이들이 없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자본주의의 폐해를 이제 들여다 보아야 한다. 현미경을 샅샅이 들여다 보고, 하늘 높히 날아오른 새의 시야로, 조감해야 하는 것이다.
 
 
세밀히, 그러나 크고 광대하게  그림을 그려야 한다. 자본주의에서의 경쟁은 과연 어쩌지 못하는 미덕인가? 로 고민해야 한다. 자본주의를 유지하되 무한경쟁은 삭제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할까? 적어도 무한경쟁, 즉, 극심한 경쟁은 완화되어야 한다. 앞서 전제했듯 국민이 중심이라면, “최대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분배의 개념이 현격하게 부상되어야 한다. 한국에는 벤담을 개무시한다. 누가? 가진자들이 말이다. 근데 없는자에 속한 상등신들은 이에 멋모르고 동조한다.
 
 
한마디로 분배정책의 대폭적인 손질 내지는 혁명에 가까운 분배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보수가 아닌, 극악한 수구의 몰락을 우선 성공시켜야 하는 것은, 시대정신이다. 그런후?  순가락 빨고 멍청히 있어서는 안된다. 시간이 지나면 보수던 집노던 군력에 승차한 이들에 의해 다시 수구세력의 병폐가 시회전반으로 확산되기 때문이다. 역시는 프렉탈이다. 무한 반복을 하는 못된 법칙에 지배 받는다.
 
 
중력의 법칙은 신의 영역이였다. 그러나 인간은 중력의 법칙을 이용하거나, 무력화 시키는 진보를 선택하였다. 경제 시스템도 그러할 수 있음이다. 그간, 기득층에 해당하는 수구에 의해 경제적 중력의 법칙에 지배받던 국민이다. 아이러니하게 정치적인 대범실(?)에 의해, 결코 변하지 않을 것 같던 무기력한 세계는 깨져가고 있음은 많은 것을 시시한다. 정치 공학적인 대변화는 경제적인 변화 또한 함의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를 보지 못하고 있음이다.
 
 
박근헤은 뿌리깊은 수구의 상징이며, 불법과 부정, 비리와 부패의 이이콘이다. 이 상징은 허물어져 가고 있다. 해피인딩이 멀지 않았다. 그러나 그후는? 정치적 대변화에 만족 할 것인가? 아니면 이번 기회에 정치.경제 시회전반에 걸친 암울한 과거를 청산하고 , 전방위적인 새로운 판을 짜야 할 것인가? 명제는 후자라 말하고 싶다.
 
 
먼저 목표가 어디인가에 촛점을 맞추어야 한다. 잔치 한번 하고 잔치상에 앉아 먹고 마시고 끝~ 또다시 다음 잔치까지 쫄쫄 굶을 것인가? 아니면, 지속적으로 자주 행복한 파티를 열것인가? 십년만에 찾아온 기회다. 십년전에 감히 상상못한 불법과 고통이 대한민국을 장악하였음을 이제서야 깨달은 것이다.
 
 
이제 늦게라도 깨달았으니,과거로 회귀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하겠다. 임진왜란의 교훈을 300년만에 까맣게 잊어버린 조상님들의 전철을 밟지는 말아야 하겠다. 새로운 시스템, 우린 그게 뭔지 몰라도 그걸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공유경제, 이걸 좀더 연구해보면 어떨까, 아직 개념화 하지 못한 진보된, 한국에 걸맞는 그런거 없을까?
 
 
요즘 생각에 인공지능과 네트워크 두가지를 조합하면 뭔가가 만들어 질것만 같다.자칫 인공지능 또한 가진자들의 전유물이 될 것이 자명하다. 경쟁력의 우위는 항상 가진자들의 몫이 되는 것이다. 영원히..이걸 막는 것은 공유, 또는 네트워크, 협동, 대동계 ,유니언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AI는 일한다. 있는자는 그 수혜자가 된다. 없는 자는 잉여인간 수준의 기본소득에 ,반려견 수준의 소비만을 할당받는다.
 
작금의 정치적 대벽혁은 ,이걸 염두에 두고 시스템을 다시 짜라는 하늘의 뜻이 아닐까? 수구들의 몰락 없이는 불가능하기에 길을 열어주는 것은 아닐까? 이걸 간과하고 정치적인 현상으로만 해석한다면? 다시 과거로의 회귀는 불을 보듯 뻔한일 아닌가?
 
추언:
하여, 퇴진 시퇴,시임, 탄핵은 기정시실이다. 또 부역자들이 처단도 현실이 된다. 하지만 이또한 거대한 변화의 편린이다.가장 중요한 것은 전방위적인 시스템을 대변혁을 마련해야 하는 국민적, 민족적 책무를 잊지 말아야 한다. 만약 성공한다면, 이것이야 말로 21세기의 거대한 한류가 되는 것이다. 예능 한류를 넘어서는 궁극의 가치, 시상적 한류다. 기존 세계경제 시스템을 유대인이 아닌 한국인이 바꾸는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