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풍수 혹세무민

언론, 풍수지리, 혹세무민

 
앨빈 토플러는 후기산업사회가 정보화 사회로 진행하면서 그 폐단의 하나로 misinformation(잘못된 정보)이 난무하면서 대중들의 정확한 판단력 상실에 의해 사회적 부작용이 야기된다고 하였다. 최근 조선일보 토요 판에 ‘국운풍수’라는 풍수(風水)지리 관련 칼럼이 게재되고 있는데 너무 황당한 글들이 많아 이에 반박하고자 한다.
 
(1) 서울의 랜드마크?
이 글에서 휴전선과 가까운 성남비행장 공군기들의 유사시 전술운용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당시 공군의 반대를 무릅쓰고 건설 중인 잠실 초고층건물을 서울의 랜드마크로 평가하였는데 이글을 보면서 조선 후기 실학자들이 풍수지리의 피해를 걱정한 걸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글에서는 석촌호수 옆의 잠실초고층건물을 문필봉(文筆峰) 모양의 명당인 서울의 랜드마크라고 하였는데 이는 풍수의 물형론(物形論)에 기인하고 있다. 현대 한국 풍수지리의 교과서로 쓰이고 있는 일제 때 일본인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이 조선왕실 지관의 도움을 받아 쓴‘조선의 풍수’에서는 풍수 기법으로 간룡, 장풍, 득수, 점혈에 관해서는 기술했지만 물형론은 풍수의 본질인 지기(地氣)를 평가하는 풍수 기법으로 전혀 기술되어 있지 않다. 조상들의 풍수에서는 地氣의 유무, 성쇠로 땅의 입지성을 평가했는데 이는 건물과 대상지의 지질, 지형, 토양, 배수, 미기후 등 자연환경 및 주변 인문사회환경과의 관계로서 건물의 가치를 논하는 것이지 건물과 땅의 외관만 가지고 논하는 물형론은 풍수 지관들에게서도 그 효용성이 의심되는 논리이다.
 
과거 한강 본류였던 석촌호수 물이 계속 줄어 한강물로 채우고 있고 잠실초고층 건물 공사장에서 하루 450톤 씩 퍼내는 물이 지질자원연구원 동위원소 측정결과에 의하면 석촌호수 물과 같고 잠실초고층 건물 주변에서 서울의 지반 침하가 제일 많이 발생하는 데도 서울시는 지하철공사를 원인의 하나로 거론하며 이에 대한 명확한 평가를 유보하고 있다.
 
미국의 과학 잡지 Scientific American은 7만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중국 쓰촨성 대지진 발생보다 40여 일 앞선 2008년 3월 싼샤(三峽)댐과 댐 내부에 담긴 393억 톤 물의 무게가 저수지 밑의 2개의 단층선에 압력을 가해 쓰촨성 지판경계선 지역에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고 예측하였다. 타이베이 101빌딩 완공 후 70만 톤의 무게로 지반에 압력을 가해 주변에 지진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고 지질학자들은 평가하고 있다. 잠실 초고층건물도 건물 자체의 구조적 안전은 문제없을지라도 75만 톤 무게 압력에 의한 지반 침하로 인한 지하배수구조의 변화는 별개로 환경영향평가 해야 할 항목이다.
(가) 지하수 유출로 인근 지역 지반 침하를 계속 주장하던 서울시 시민자문단 위원은 자문단 활동 끝 무렵에 문제없다고 말을 바꾸고
(나) 해당 건설업주는 건물하중에 의한 주변 지역의 영향평가를 대한하천학회에 의뢰하고 학회는 서울시 자문단으로 활동하면서 건물 하중에 의한 주변지역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교수에게 평가용역을 주는 현실에서 평가의 공정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다) 환경영향평가회사가 설립 후 해당건물 한 건만 수행하고 서울시 건축허가가 나자마자 법인 해산한 의문투성이의 환경영향평가를 한 건물을 문필봉(文筆峰)이라고 내세우면서 서울의 랜드마크라고 하는 데는 어이없을 따름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규제완화라는 이름하에 고층건물 환경영향평가를 유보하고 안전기준을 대폭 완화한 결과 건물들과 바다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하고 있지 않은가? 서울시는 주무관청으로서의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시행하고 환경부는 고층건물 환경영향평가를 즉각 실시하기 바란다.
 
(2) 암석장? (2015.9.26.자)
필자는 최근에 유행하는 수목장의 대안으로 암석장을 추천했는데
수목장은 나무 밑의 벌레와 들쥐들이 유골을 파먹는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은 장묘법이고
암석장은 풍수에서 금하는 장묘인데 왜 이를 추천하는가?
 
(3) 신지비사하얼빈이 삼경? (2015.10.3.자)
실체가 불분명한 단군시대의 도참서 ‘신지비사’를 언급하며 여기에 나오는 삼경(三京)이 서울, 안시성, 하얼빈이라고 단재 신채호가 기술했다고 하는데
하얼빈은 겨울에 영하40도의 혹한으로 부여족이 남으로 내려와 졸본부여를 건립 길림성의 가장 따뜻한 강남인 집안에 도읍하고 장수왕은 나이가 들어 추우니 평양으로 천도했는데부족국가 시대의 잠시 중심지였을망정 왕국의 수도로는 턱없이 부족한 도시로서 단재가 언급했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질 않는다.
환단고기도 주류 역사학계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국민들의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일부 재야사학자들의 주장이 고증되어야 할 부분이 산넘어 산인 현실에서
신지비사 + 단재 + 하얼빈 + 만주를
적당히 엮어서 논증되지 않은 논리로 도참서를 인용하는 건 고려말 조선말 도참서가 유행했던 역사 기록을 떠올리게 한다.
 
오늘날 일부 신문과 방송에서 재벌건설회사가 짓는 건물, 주거 단지와 풍수의 명당이 일치하는 글과 말을 보면 왜곡된 풍수 논리의 남용이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조선시대 관청 송사의 90%가 풍수관련 송사였는데 명당을 찾지 못한 우리 조상들은 풍수 까막눈이었는가? 나라의 기둥인 청년들이 부모 도움없이는 전세조차 마련 못해 연애, 결혼, 출산 포기의 3포시대라는 말이 유행하고 그들에게 희망대신 좌절과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는 요즈음 신문과 방송은 혹세무민하는 풍수의 본질에서 벗어난 논리를 기사화하거나 방송하지 말기를 바란다.
 
풍수가 개인의 利己的인 욕망과 지배 계층의 자기 과시 수단으로 전락되어 잡술로서 사회의 타락을 부채질한다고 한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개탄이 과거 일 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