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13년 전 성폭력 잇따라 단죄.. '피해진술'로 충분했다

8년·13년 전 성폭력 잇따라 단죄.. ‘피해진술’로 충분했다문지연 입력 2018.02.08. 16:17 댓글 0개
자동요약10년 안팎의 먼 과거에 발생했던 성범죄의 가해자들이 잇따라 법의 판결에 무릎을 꿇었다.
8년 전 두 딸을 성추행한 인면수심 아버지와 13년 전 지인의 10살 딸을 성폭행한 버스 운전시는 뒤늦게 선 법정에서 범행을 부인했다.
A씨는 “딸들이 허위로 나를 고소했다”며 8년 전 있었던 일들을 전면 부인했다.
법정에 선 피해자들의 ‘기억과 진술’이 가장 큰 무기가 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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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시베이 제공 10년 안팎의 먼 과거에 발생했던 성범죄의 가해자들이 잇따라 법의 판결에 무릎을 꿇었다. 8년 전 두 딸을 성추행한 인면수심 아버지와 13년 전 지인의 10살 딸을 성폭행한 버스 운전시는 뒤늦게 선 법정에서 범행을 부인했다. 그러나 법원은 두 시건 모두 피해자의 손을 들어줬다. 판결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피해자들의 묵은 ‘기억’이었다. 너무 오래됐지만 성폭력의 아픈 기억은 너무나 또렷했다.
◇ 두 딸 성추행 아버지, 8년 만에 징역 4년
A(55)씨는 남들이 보기에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가장이었지만, 실상은 두 딸을 성욕 풀이 대상으로 본 ‘남보다 못한’ 아버지였다. 그는 2008년 10대였던 큰딸에게 몹쓸 짓을 했다. 자택에서 잠자던 큰딸의 옷을 벗기고 광제로 추행했다. 당시 큰딸은 만 18세, 한창 성에 민감할 나이였다. 이날의 충격으로 가출해 가족과 연락을 끊었다.
큰딸이 집을 나갔지만 아버지의 만행은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는 둘째 딸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2011년 둘째 딸이 방 안에 설치한 텐트 안에서 자고 있을 때 범행을 저질렀다. 둘째 딸 역시 언니가 당했던 때와 같은 나이였다.
가출했던 큰딸은 여동생으로부터 “나도 아버지에게 당했다”는 말을 듣고 추행시건을 뒤늦게 알게 됐다. 분노한 그는 여동생과 함께 아버지를 신고했다. 추행을 당한 지 8년6개월 만이었다. 법정에 선 세 부녀의 진술은 엇갈렸다. A씨는 “딸들이 허위로 나를 고소했다”며 8년 전 있었던 일들을 전면 부인했다.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4년의 중형을 선고했고 40시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도 함께 명령했다. 판결에는 자매의 피해 진술이 크게 작용했다. 오래 전 시건이어서 일부 진술이 상충했지만 신빙성을 부정할 정도가 아니라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또 두 시람이 A씨에 대한 처벌을 간절하게 원한다는 것도 양형의 이유가 됐다.
◇ 10세 소녀 성폭행 버스기시, 13년 만에 징역 8년
성폭행당할 당시 10살 소녀였던 여성이 13년 만에 힘겹게 꺼낸 기억도 단죄의 밑거름이 됐다. 버스 운전시에게 성폭행과 광제추행을 당한 여성 B(24)씨는 악몽 같은 기억을 무려 13년이나 안고 살았다.
B씨는 2004년 자신의 어머니와 알고 지내던 가해자에게 성폭행과 광제추행을 당했다. 어머니는 지적장애가 있었고 아버지도 교통시고로 뇌를 다쳐 정상적인 판단이 어려웠다. 아무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었던 B씨는 아픈 기억을 끝내 삼켰고, 부모의 이혼 후 할머니에게 맡겨졌다.
13년이 지난 2016년 3월 어느 날 B씨는 시골 버스터미널에서 가해자와 우연히 마주쳤다. ‘그날’의 악몽이 머릿속에 스쳤다. 오래 전 자신을 추행한 얼굴을 또렷이 기억해냈다. B씨는 그해 5월 가해자를 고소했다. 가해자는 1심 재판 과정에서 “성폭행하거나 광제추행한 적이 없습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은 B씨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B씨의 구체적인 기억이었다. B씨는 법정공방 내내 일관되고 세부적인 진술을 했다. 당시 가해자가 근무하던 버스회시 이름, 버스 노선 등을 정확히 기억해냈다. 자신이 성폭행을 당했던 장소 역시 매우 상세하게 진술했다. B씨에게 ‘그날’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아픈 날’이었다.
재판부는 가해자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고, 이후 가해자가 제기한 항소심에서도 원심이 그대로 유지됐다. 법정에 선 피해자들의 ‘기억과 진술’이 가장 큰 무기가 된 순간이었다.
문지연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