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만도 못한 인간의 죽음?

 
개는 안락사 시킨다.

그런데 사람은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아
죽고 싶으면
떨어져 죽든지 목매달아 죽든지
물에 빠져 죽든지, 약먹고 죽어 
극심한 고통과 함께 참혹하게 죽든지

병원에서 마루타 처럼 각종 전자 기계와 인공 호수를 몸에 끼우고 실험 대상이 되어
목숨을 연명하다 생을 마감해야 한다.

그나마
나무나 화석연료등 일산화탄소와 자동차 배기가스나 도시가스등으로 질식사 하여
좀더 품위있는 죽음을 죽든지
알아서 선택해야 한다.

인간으로 태어나
살고 싶어 살아가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왜 사람들은
살면 좋고 죽으면 나쁘다고 하는가

살아있는 자체가 고통이고 죽고 싶은데
억지로 살고 있으면
이 세상이 지옥이 아닌가
꼭 죽어서 지옥가는 것은 아니라
억지로 살고 있는 자체가 지옥인 것이다.

살아 있는 자체가 행복하다면
이 세상이 천국이 되는 것이다.
죽으면 지옥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이 지옥인 사람들은
죽으면 천국이 될수 있다.

나의 가장 큰 소원은

오늘 저녁 잠이 들어
내일 깨어나지 않고 영원히 잠이 드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제일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자연적인
안락사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보통 70대 이상 이런 죽음을 호상이라고 한다.

내일 다시 깨어나면
힘겹고 고통스런 삶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안락사를 적극 실시하고
긋이 살고 싶지 않는 사람은 본인의 자의적인 선택에 의하여
안락사를 허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목숨은 개인의 자유인데
법으로 제약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전단지를 보내면 북한에서 전쟁을 한다고 하는데도
보호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왜 개인의 죽음에 대한 자유는 제약을 하는지
이해가 안간다.

태어난 것은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죽을 권리는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머리 나쁘고, 못생기고, 키작고, 휘귀난치성 불치병, 정신등 유전병 보균자,
가난한 집안, 성격도 모나고 모든것이 열세인데

경쟁과 실적을 추구하는 무한경쟁 자본주의 사회에서 항상 뒤로 밀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살아봐야 뻘할 뻔짜 아닌가
남의 하수인이나 노예로 일평생을 죽어라 일하고 고통받으며 살아가야 한다.

사람의 운명은
선천적으로 50% 노력이 50%정도 정도 좌우한다.
현시대는 1%가 좌우하는 사회로
선천적으로 열세인 사람은 희망이 없는 사회다.

내가 이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억지로 태어난 것도 억울한데 
법으로 고통없이 죽지도 못하게 하다니
너무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아닌가

죽을때 고통없이 간다는 하는데 뭐가 그리 큰 죄인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살고 싶은 사람만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지금 이순간에도
죽고 싶은데
죽는 고통과 두려움에 망설이는 사람이 너무 많다.

두려움의 고통만 없다면
나는 오늘이라도 당장 죽고 싶다.

어자피 이 세상은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인간은 반드시 모두 죽는다.
좀 늦게 죽거나 빨리 죽는 것이 차이가 날 뿐이다.

더럽고 추하고 고통스럽고 어렵게 살아간다면
굿이 끈질긴 목숨을 연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오늘 잠이 들어 내일 깨어나질 않기를 바라며
오늘도 잠에 든다.
나의 희망은 언제 이루워 지려나

차안에서 20대 남여가 연탄피우고 죽었다는 뉴스를 보고
그들의 용기와 결단력
부럽다.

나이가 들고 병이들면 마음이 약해서 죽는것도 어렵다.
구질구질한 삶을 이어갈수 밖에 없다.

안녕~~ 영원히